Lectio_Column

[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1) 영성순례의 길

샬렘하우스주방장 2013. 9. 24. 18:00

초대교회 이스라엘서 근세교회 영국까지 예수님과 여행

 


성경이 가르친 인생에 대한 좋은 은유가 있다. 그것은 인생은 순례와 같다는 것이다. 순례는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길을 가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일 것이다. 아브라함 이후 하나님의 사람들은 순례의 길을 떠났다.

성경의 순례는 그래서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이다. 까를로 마짜가 그의 ‘순례영성’에서 말했듯이, 순례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피조물적 본성이요 신앙의 핵심이다. “어느 곳이나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열망과 향수를 잠재워줄 영원한 고국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여행자(homo viator)이다.” 그에 의하면 순례는 본질적으로 거룩한 장소로의 회귀이며 존재의 원천인 하나님으로의 복귀이다. 그리고 교회는 순례자의 공동체다.

필자는 오랫동안 영적 순례를 꿈꾸었다. 본래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2000년 교회사를 흐르는 영성의 현장을 발로 밟아보는 것은 필자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날 은혜로 주어졌다. 한신교회 목회 6년을 마친 작년 7월, 안식년이 시작된 것이다. 안식년이 닥치자 교회를 오래 비워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걸렸지만 영성의 현장은 이미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느 날 떠나기로 마음먹고 계획을 세웠다. 성경이 쓰인 이스라엘로부터 시작하여 교회사의 행로를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먼저 이스라엘로 가서 영성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다음 로마에서 초대교회를,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중세교회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독일, 스위스, 프랑스에서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를, 그리고 영국에서 근세교회의 영성을 보고 싶었다.

그 중에서 반드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떼제공동체였다. 떼제와 함께 유럽의 중요한 수도원, 교회들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 계획을 가능한 일정표로 만들어 보니 2∼3개월이 나왔다. 그래서 3개월을 쉬기로 하고 영성순례를 출발했다. 짧은 기간 필자가 경험한 영성의 경험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다만 받은 은혜가 너무 컸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 영성순례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깨달았다.

첫째, 목표는 하나님이다. 순례란 목표를 향해 길을 나아가는 것이다. 목표가 없는 것은 순례가 아니라 방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례의 영성은 목표지향적 영성이다. 순례의 영성을 대표하는 작품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다. 천로역정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장망성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시온성에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는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끝내 시온성에 도착한다. 시온성은 곧 하나님이 계시는 보좌요,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의 신앙적 목표는 어디인가? ‘잘 되는 나’인가? ‘행복한 현재’인가? 순례의 영성은 현재의 행복에 안주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구도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둘째, 과정이 중요하다. 순례의 영성이 하나님을 향한 목표지향적 영성이지만 그것은 수많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파울로 코엘료가 스페인의 산티아고에 있는 성 야고보 무덤을 순례하고 쓴 책이 ‘순례자’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한다. “순례할 때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걷지 말 것이요 언제나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갈 것이며 그대를 인도하는 이에게 절대 복종하기를 심지어 살인이나 신성모독을 명할지라도 그대로 복종해야 하리라.” 과정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아름다움을 보려거든 속도를 줄여야 한다. 우리는 너무 목표지향적인 나머지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산에 올라도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만 오른다. 정상 정복이 유일한 목적이면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길가에 피어 있는 패랭이꽃도 볼 수 없다.

셋째, 예수님과 동행해야 한다. 여행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이다. 이번 순례는 아내와 함께 갔다. 그리고 순례길에서 좋은 동역자들을 만났다. 그래서 행복했다. 순례하면서 예수님과 매일 동행한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33년을 백성들과 함께 사시고 마지막에 오른편 강도와 함께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영성일기다. 매일 저녁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느끼고 배운 것을 깨알같이 적었다. 시간이 진행되면서 영성일기는 조금씩 깊어졌다. 단순한 여행기록이 아니라 오늘 내가 예수님과 동행했는가를 물었다. 그렇게 몇 달 쓰는 사이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점차 생활화됨을 느꼈다. 시리아의 성자 아이작이 말했다. “어머니를 붙잡아라. 그러면 자녀들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모든 것을 얻는다. 영적 순례는 예수님과의 동행하는 삶이다.

넷째, 성령님이 인도하신다. 여행에서 좋은 가이드를 만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 가이드는 길 안내자다. 그 길을 알고 그 길을 가고 그 길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거기다가 따뜻하고 친절하면 더 좋을 것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인도자라고 말한다. 그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신다. 레이 프리차드는 ‘하나님, 아직도 나를 인도하시나요?’에서 민수기 9장 18절에 나타난 말씀을 성령님의 인도라는 시각에서 해석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이 말씀에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먼저 성령님은 우리를 한 번에 한 단계씩 인도하고, 성령의 인도는 우리의 온전한 순종을 요청하며, 누구도 성령의 감동보다 앞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순례의 영성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이다.

다섯째, 교회는 순례자의 집이다. 여행 중 피곤한 나그네는 잘 쉼터와 양식을 제공받아야 한다. 함께 온 사람들은 순례의 길에서 만난 순례의 친구들이고 목회자는 그들을 두 손 벌려 환영하는 환대자다. 다음 주부터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회, 거룩한 영적 순례를 예수님과 함께 떠났으면 좋겠다.

(한신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