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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대의 영성] 휴대전화? 노트북?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샬렘하우스주방장 2013. 11. 21. 19:16

[스마트시대의 영성]

휴대전화? 노트북?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기독교 수도 공동체인 예수원. 산 중턱에 자리잡은 예수원 한켠엔 공중전화 한 대가 설치돼 있다. 도시의 공중전화 부스는 애물단지로 변한 지 오래지만 예수원의 공중전화 부스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곳 공중전화는 바깥세상과 만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예수원은 1965년 창립 이후 하루 세 차례씩 침묵기도 시간을 지켜왔다. 온전히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떼어두는 것이다. 밤 9시부터 10시까지 ‘소침묵(小沈默)’,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예배 전까지는 ‘대침묵(大沈默)’, 점심식사 직후인 매일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개인 침묵기도 시간을 갖는다. 일상을 뒤로 한 채 기도와 안식을 찾아 매년 8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방문객 중 20, 30대가 절반을 넘는다.

예수원에서는 각종 전자기기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 30일 예수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예수원을 방문하려는 사람은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는 물론 개인용 태블릿PC, 노트북 컴퓨터, 차량 키까지 예수원 사무실에 맡기고 일과를 보내야 한다. 카메라도 사용할 수 없다.

예수원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통제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 삶을 경험하고 기도에 집중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며 “사진 촬영은 방문 기념사진 정도만 허용한다”고 말했다.

예수원에 상주하는 공동체 회원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50여명 회원 중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은 리더 3∼4명을 제외하고는 없다. 휴대전화라고 해봐야 구형 폴더폰이다. 이들은 긴급 전화 목적 외엔 잘 사용하지 않는다. 회원들은 직접 만나 대화하고 필요하면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여름방학 중 3박4일을 예수원에서 보냈다는 대학생 김모(22·여)씨는 “처음엔 스마트폰이 없어 세상소식이 궁금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기도에 집중하게 됐고 ‘카톡’에서도 해방됐다”며 “약해진 신앙을 반성하고 새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서울 화곡동 떼제공동체에서도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기도모임이 열린다. 십자가와 성화를 바라보며 촛불 몇 개를 밝힌 채 간단한 찬양과 침묵기도, 시편 묵상 등으로 진행된다. 떼제공동체 다니엘 수사는 지난 29일 “기도회는 조용히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을 강조한다”며 “침묵과 정적 속에서 예수를 바라본다”고 말했다.

서울 떼제공동체의 경우 7, 8월은 기도회 모임이 없다. 지난 6월까지 기도회에는 평균 10명 안팎의 방문객이 참석했다. 기독교인과 가톨릭 신자를 비롯해 무신론자까지 찾는다. 다니엘 수사는 “프랑스 부르고뉴 남부 떼제공동체에는 전 세계에서 연간 10만여명의 젊은이들이 방문한다”며 “디지털 기기 등 대중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이 조용함과 단순함에 대한 갈망이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에는 떼제공동체 기도회 방문기 등이 올라와 있다. 주로 교회 청년이나 신학생들의 체험기로 침묵과 고요, 정적 속에서 느낀 감회가 많다. 최모(23·여)씨는 “하나님과 조용히 쉼을 누린 시간이었다”며 “휴대전화의 각종 알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43)씨도 “현대인에게 침묵과 고요가 얼마나 낯선 것이었는가를 절감했다”며 “요즘 주일예배에 갈 때는 가급적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간다”고 말했다.

신앙생활에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불편은 성장을 위한 또 다른 방식이다. 불편한 삶이 하나님, 이웃과의 만남을 더 깊게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17세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아미쉬 마을엔 세 가지가 없다. 전기와 자동차, 전화다. 이들은 시대마다 당대의 문명에 대해 테크놀로지가 하나님 나라의 삶과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것인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판단한다.

미국의 대표적 디지털 잡지인 ‘와이어드’ 설립자 케빈 켈리는 정작 자신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그는 2년 전 기독교 잡지 ‘크리스채너티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최대한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테크놀로지의 선택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아미쉬야말로 테크놀로지를 최소화한 좋은 사례”라고 치켜세웠다.

대한성공회 샬렘영성훈련원 김홍일 신부는 “디지털 기기 없는 침묵기도와 안식 등 아날로그적 신앙 방식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종교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지만 영적인 면에 대해서는 갈급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