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_Preaching

13.01.13.주일설교 : 은혜 입은 자의 삶(창6:1-12)

샬렘하우스주방장 2013. 1. 19. 21:00

13.01.13.주일설교

제목: 은혜 입은 자의 삶 / 성구: 6:1-12

 

지난 한 해 동안, 때로는 어렵고 힘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우리 교회와 가정,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나고 보면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생활 속에 있습니다. 아침에 눈뜨고 저녁에 잘 때까지 삶의 순간 순간마다 아..이것이구나! 손에 잡히도록 주십니다. 특별히 말씀 안에서 은혜를 입은 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노아를 통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첫째로, 노아는 의인(義人)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노아가 살던 당대란 어떤 시대였을까? 성경이 묘사한 그 시대는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1)입니다. 당시의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취해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은 용사였고, 유명했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네피림”(Nephilim:‘큰사람또는 용사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히브리어로는 나발, 떨어짐 등을 의미한다.)은 건강에 관한 것입니다. 결국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추구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성공과 건강과 출세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당시 노아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아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하는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복 주시옵소서, 건강하게 해 주옵소서많은 사람들이 복과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의 기도하는 것이 결국은 번성하고, 성공하고, 그래서 내가 유명해지고 건강하게 되는 것이라면, 분명히 이제는 기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노아는 성공, 건강, 출세에 대해서 자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유했다는 말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공하고, 출세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과 객이 바뀌면 안 되듯이...우리 신앙의 본질이 바뀌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욕심이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노아는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노아가 잘 한 것이 있다면, 구별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당대의 사람들과는 달리, 성결한 삶,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노아를 완전한 자로 여기신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영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구별되어 살아가야합니다. 내가 그저 행복하고, 쾌락을 추구하고, 즐겁고, 웰빙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자는 건강하고 행복하며 안정돼 있습니다. 거룩엔 또한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룩이라고 해서. 고매하게 앉아서 기도를 하는 것이 거룩이 아닙니다. 위엄있고 모양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이란, 하나님께로 코드를 맞추고 경건의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본질, 진수를 거룩이라고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사람은 담대합니다.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경륜하심 안에서 깊이 머무는 삶을 삽니다. 자연히 행복은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며, 이 땅, 이 시대, 그리고 사람들은 구원받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도록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유를 추구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추구해야합니다. 구원받았을 때 비로소 최고의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시고 영생의 복을 주시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자유요, 최고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편 5112) 범죄하고 난 다윗이 하나님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이렇듯 호소하는 것은, 구원의 즐거움이 최고의 즐거움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일시적이고 충동적이며 중독적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그것을 마실수록 더 목마릅니다. 갈증이 날 때 아이스크림, 콜라를 먹으면 더 갈증이 나는 것처럼, 먹을 때는 시원하고 달콤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갈증 나게 하는 것이 바로 세상이 주는 유희며, 쾌락입니다. 그렇다 보니 세상의 즐거움은 더 강한 것,,더 강한 것...그러면서 사람을 점점 더 마모시키고 파괴시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안에서 강해지고, 주안에서 평안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웰빙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노아는 바로 그 당시 사람들과의 구별된 두가지, 거룩한 것과 구원의 즐거움을 추구했기에 하나님께서 완전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한 자, 모든 것이 100%충분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쓸데없는 것에 고민하지 않고, 세상의 번뇌에 자기를 빠뜨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쓸데없는 비교 의식과 경쟁의식에 빠지면 사람이 비참해집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시기 때문에 각양 다른 재능을 주십니다. 그런데 내게 주신 것들에 대해선 감사할 줄 모르고, 그저 나한테 없는 것, 남한테 있는 것만 바라보게 되면 실족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남의 손에 있는 사과 쳐다보지 말고, 자두든 복숭아든 수박이든 내 손에 있는 것을 드십시오. 그렇게 사는 것이 완전하게 사는 것입니다.

 

2. 둘째로, 노아는 의인(義人)이었습니다.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1,4,5,6절의 말씀과 8-9절의 말씀은 무척 대조적입니다.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세상은 죄악이 가득하고 하나님께서는 급기야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지만, 그런 와중에도 노아는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의인’(義人)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치보고, 사람들한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춰가는 사람이 의인”(義人) 것입니다.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우리가 먼저 구해야할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모든 것은 덤으로 주시는 보너스에 불과합니다. 노아가 의인이었고 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은 바로 노아가 이 모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의인(義人)이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를 의롭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고, 하나님 보시기에 괜찮은 사람, 기뻐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로마서 122절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돈을 따라 움직이고 인기를 따라 움직이면 오래 못갑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먼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합니다. 말씀이 내게 부딪혀 은혜가 되면 그 말씀을 통해서 나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전기가 전선을 타고 오듯이,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말씀 없는 인도, 말씀 없는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 속에 답이 있고,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 따로 행동 따로 하면, 따로국밥은 맛있을지는 모르지만, 따로 말씀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번지르르한 말보다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대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노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번성, 건강, 안전을 추구하고, 출세를 지향하던 세상에서, 노아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았기에 그 집안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탓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곳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행복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살기 좋은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것을 탐하다가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환경이 완벽하다고 사람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환경이 좋다고 믿음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다보면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바로 그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이처럼 사람들이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에 자꾸 넘어가는 것은 하와 때부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죄의 사이클입니다.(원어적인 의미도 같다) 노아시대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넘어간 사람들을 육체가 되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우리 몸은 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소파에 드러누워 예배드려 보십시오. 그러다보면 베개 좀 갖다 줬으면 좋겠고, 베게 주면 홑이불로 발이라도 덮어 줬으면 좋겠고, 이불 덮어 주면 에어콘 틀어 주고 주스 한잔 갖다 줬으면 싶을 겁니다. 성경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고, 육체는 십자가에 못을 박으며, 자기를 치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몸을 너무 우대하지 마십시오. 육체적인 경향을 따라 가다보면 멸망에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서 우리 몸을 훈련해야합니다.

노아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인 경향을 따라갔지만, 노아는 영적인 신령한 경향성을 따라 갔던 사람입니다. 노아 같은 경향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3. 셋째로,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대부분 사람들이 육신 위주, 물질위주, 쾌락위주로 살아갈 때, 노아는 은혜 위주로 살아갔습니다. 은혜는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1:17 )이처럼,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은혜라고 합니다. 내가 받을 능력은 안 되지만,하나님이 자꾸 부어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하는데, 이러한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위주로 살아가십시오. 자기 위주로 살아가면 피곤합니다, 은혜 위주로 살아가면,“사나 죽으나 주님의 은혜고, 내가 여기 온 것도 만 가지가 은혜라는 고백과 함께 기쁨이 흘러 나옵니다.

각 시대마다 위대했던 사람들은 다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최상이며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뜻은 재앙에 있지 아니하고 평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은혜를 입은 자, 은혜 위주로 사는 자가 바로 완전한 자입니다.

시대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별명이 있었습니다. 노아는 완전한 자, 다윗은 정직한 자, 욥은 순전한 자, 디모데는 깨끗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 갈렙은 믿음이 온전한 자였습니다. 이 말은 이 사람들이 아무 허물도 없이 100% 완전무결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내적 상태가 깨끗하고 정직하고 순진하여 하나님만 좋아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사람들을 쓰시는데 한결같이 깨끗한 사람들을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그릇보다는 거룩하고 깨끗한 그릇을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성공을 오해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성공은 세상에서 출세하고 번성하고 건강하고 유명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비록 크게 성공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그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에 엄청난 평안과 부요함을 줍니다. 아침부터 늦게까지 평안과 부요를 위해 살지않습니까? 그게 인생이 아닙니까?

사람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주님 손잡고 동행하는 사람과 세상을 벗삼아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 자랑하고 의지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낭패를 봅니까?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면 다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알았습니다. 아멘.

 

여러분! 이 시대는 고독한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세상을 따라 가게 되고, 자꾸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불나방처럼 따라 가다보면, 좌절하고 급기야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사단의 고도의 전략입니다. 이번에 조성민씨인가요. 그 멀쩡한 운동선수가 자살하는 것 보세요. 목숨을 끊으면 회복할 기회가 없는 겁니다. 예수이름으로 자살을 내어 쫓으시길 바랍니다.

첨단을 걷는 이 현대에 특별히 노아를 주목해 보세요. 노아는 사람들 보기에 외롭고 골통 같은 행동으로 보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외롭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은 축복이요,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어설프게 여기저기 따라가지 마시고 정신차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때로 고독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노아는 백이십년 동안 왕따를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배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남들이 성공에 집착할 때 오히려 천천히 살아가는 길을 택하십시오. 때론 가만히 있는 것이 능력입니다. 홍해 앞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만 불평할 때 모세가 뭐라고 합니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보라고 합니다. 실제로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잠수정을 띄웠습니까? 보트를 띄웠습니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아마 조급증에 바다에 뛰어들었더라면, 다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믿는 자는 천천히, 가만히 살아가야 합니다. 방향이 분명하다면 가만히 사는 법도 배우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노아의 순종입니다.

14절에 보면,“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6:14)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노아야, 대충 만들어라..네 마음대로 만들어라하시지 않으시고, 일일이 그 양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창세기 75절에 보면,“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7:5) 노아가 범상한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대로를 준행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순종을 해도 자기 마음대로 순종합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순종을 합니다. 내 방식대로 믿고 순종하니까~ 신앙생활이 뒤죽박죽이요, 가정이나 교회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성경대로 말씀대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믿으려고 힘쓰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믿으면 됩니다. 그냥 믿으십시오. 그것이 힘이요, 능력입니다.

여러분~노아가 완전한 자가 된 것은 백이십년동안 왕따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것을 다 준행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전기톱이 있었습니까? 기중기가 있었습니까? 그렇다고 크레인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시대에 길이가 150m, 넓이가 25m, 높이가 15m 나 되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순종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명령에 노아는 120년이란 시간을 순종합니다.

우리가 은혜 위주로 산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대로 사는 것이 은혜대로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노아가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규격대로 정확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감당키 어려워 보여도 순종하고, 준행하면, 그 준행에 합당한 건강, 능력, 물질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못 지킬 것을 명령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내 방식대로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좋은 것은 믿고 싫은 것은 안 믿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망하시고 심판하실 때에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완전한 믿음입니다. “왜 내게 이런 환경을 허락하실까?” 때로는 황당하고 순종하기 어려울 것 같아도 그 환경에 순종하고, 명령하신 것을 다 지킬 때 순종한 만큼 복이 됩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영국에서 여행을 하던 사람이 해안지방을 지나는 중에 많은 갈매기가 해안에 죽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치우고 있는 인부들에게 왜 갈매기들이 죽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인부가 대답하기를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들에게 과자, 사탕 등 맛있는 것을 주지만, 이런 음식은 갈매기에 해로운 음식이며 좋은 자연 음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갈매기들이 이런 과자 캔디들의 받아 먹다보면, 좋은 음식에 대한 식욕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이 끊어지면, 그렇게 좋은 자연 음식이 바다에 그렇게 많이 있지만, 갈매기들은 결국 굶어서 죽는 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에 맛이 들어 버리면, 우리는 굶어 죽는 갈매기처럼 되고 말 것 입니다. 좋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바로 이것이...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본분입니다. 그래서 이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며, 현상들을 영적으로 분별해야합니다.

무엇보다도, 악은 그 유전성이나 감염의 속도가 빠르고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늘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든든히 서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때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시고 그때마다 오늘 본문의 노아를 기억하세요.

창세기 6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처럼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분의 은혜를 입어 이 시대의 완전한 자로서의 사람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