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_Preaching

13.01.06.주일설교 : 택하심과 보내심(창 12:1-3)

샬렘하우스주방장 2013. 1. 7. 05:38

13.01.06.주일설교

제목: 택하심과 보내심 / 성구: 12:1-3

 

새로운 2013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의 출발에 있어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고향을 떠나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아갔던 한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합니다. 우리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누굴까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 그런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고향을 떠남으로써 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21절에 보시면,“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이 떠나라는 명령에서 시작됩니다. 세 가지를 떠나라고 그랬어요. 1)본토를 떠나라, ‘네 잔뼈가 굵어왔던 그 삶의 터전을 떠나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삶의 근거를 바꾸라는 주님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2)네 친척을 떠나라. 너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네게 영향을 주었던 과거의 영향력에서부터 이제는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3)네 아비집도 떠나라. 아비는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그러나 새로운 가치관과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영향에서부터도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삶의 주인이 필요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전의 삶, 주님을 몰라라 했던 삶에서 뒤로 돌아 했던 것, 바로 회심(이 돌이키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하게 됩니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떠나는 것은 포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포기는 단순한 희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축복을 위한 떠남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내가 준비한 땅이 있다.” 그러면서 2절 이하에 내가 너로 커다란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의 떠남은 축복을 위한 떠남이다. 할렐루야!!! 물론 떠날 때는 아픔이 있습니다. 떠날 때는 포기가 있습니다. 떠남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떠남은 축복에 대한 떠남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해를 떠나가는 출발선상에 있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떠나면서 출발하면서, 축복의 떠남, 축복의 출발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아브라함에게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출발이 축복의 출발, 축복의 떠남이 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아브라함은 그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선택(election)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선택은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이 선택은 부르심과 보내심을 모두 포함 합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가라, 네게 복을 주어..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임이라.”(12:3) 이것이 선택이 선교적 차원을 포함하는 것을 뜻합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심은 순전히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만한 공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멜기세덱이나 욥과 같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집안의 출신이며, 한 유리하는 아람사람이며, 타락한 인류의 한사람인 아브라함을 은총을 받을 사람으로 되게 하셨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신명기76)이러한 선택의 목적은 어떤 직무를 담당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러니 선택은 어떤 특혜라고만 할 수 없고 그보다는 책임이 큽니다.

 

사도행전 72절과 3절에 보면, 훗날 스데반의 입술을 통해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이렇게 사도행전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아브라함이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셨어요.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지시하는 땅을 향해서 가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은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둥번개나,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나타나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여주시지 않더라도, 지극히 자연스런 방법으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주권, 즉 마음입니다. 그러한 방법을 채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예요. 내가 기대하는 방법으로 나타나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성경은 하나님은 말씀하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 들어갑니다. 전도를 해요. 어떤 사람만 믿어요.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답답해 하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2826절 이하에 보면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그 다음 27절에 보시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또한 히브리서 315절에 보면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다시 말하면, 성경은 우리 마음이 준비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준비되면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어요.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준비된 자를 쓰시고 준비된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 사무엘이 엎드려서 자기 일생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면서 제가 여기 있나이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그랬을 때, 그 어린 소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새해 벽두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좀 엎드려져서 진지하게 새해부터는 성경 더많이 더 깊이 읽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해 보세요.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나에게 부딪쳐 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 무엇처럼...읽을 때 그 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출발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모해야합니다. 그 쪽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전의 무기력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이제는 새로운 각오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이전에 잘못된 선입관이나, 경험들을 내어 던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고 말하세요. 생생하게 지금 역사하고 일하시는 그 분앞에서..“하나님, 제 인생에 해답을, 저의 삶의 방향을 말씀해주세요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출발이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인생입니다. 그의 위대한 영적 여행의 출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축복을 위한 떠남을 할 수가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2.둘째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계획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새해가 되면 한해의 계획을 세웁니다. 일기도 쓰고, 요즘 잘 정리된 수첩을 가지고 하루를 계획하기도 하고 한달, 일년을 계획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정리합니다. 중요한 일이죠!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계획과 우리 믿는 성도들의 계획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계획하는 겁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경험대로... 과거에 이러했고 앞으로 이러해야지..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인줄로 알고 고백한다면, 그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분의 뜻을 발견하여 계획을 짜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2013도 어떻게 살까요? 아니 내 일생을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좀 보여 주세요. 인도해 주세요.”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뭔가가 들려옵니다. 내 마음 속에 어떤 인상이 다가옵니다. 뿌듯한 감동으로 확신에 찬 그 무엇이 내 마음에 일어납니다. 소원이기도 하고, 결단이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소원을 불어 넣어 일하십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는 순간, 바로...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나의 비전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계획과 다른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로, 내가 너를 통하여 그 땅에 가면 큰 민족을 이루겠다. 그리고 너를 축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그래요? 하나님,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하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민족에 대한 비전, 내가 위대한 민족을 이끌어 가는 첫 출발점이 될 수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근원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마음속에 비전이 생겼어요. 꿈이 생겼어요. 이 꿈은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동시에 아브라함의 꿈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분명 어떤 패턴이 있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사람이 꼭 같이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들어요. 1) 한 사람은 예배 끝나고 성령 충만하고 용기백배하여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벌떡 일어나서 찬양을 하면서 인생을 향해서 도전을 시작합니다. 2) 또 한 사람은 예배드리고 가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또 다시 무기력하게, 또 다시 방황하는 모습으로, 좌절하는 모습으로 그냥..인생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똑 같이 성경공부를 합니다. 1) 그런데 한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내 인생의 새로운 비전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한 새로운 설계를 통해서 벌떡 일어나서 나아갑니다. 2) 그러나 똑 같은 한 사람은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무기력하고 좌절된 모습으로 그 자리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무슨 차이 입니까? 그 차이가 뭘까요? 바로 믿음의 차이, 믿음의 차이인 것입니다.

 

~ 오늘 성경은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18절에 보면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그기에 강조된 단어...뭐냐 하면 믿음으로,,믿음으로...’정말로 이 믿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믿은 것입니다. 나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그렇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향해서 이런 놀라운 일을 준비하셨구나.”

그것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42절에 보면들은바 말씀이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들은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두 사람이 똑같이 들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유익치 않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 차이가 바로, 믿음에 화합치 아니함이라, 믿음에 응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었습니다. //***인공위성이 발달한 요즘은 지역마다 정보를 정확히 받아 볼 수가 있지만,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날 당시에는 전혀 정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었습니다. 들은바 말씀에 화합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말씀에 화합하여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 보면 믿음을 뭐라고 했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한 것들의 증거라” / 의심 많았던 제자 도마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네가 본고로 믿느냐?” 그 다음에 뭐라고 그랬습니까?“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더 복되다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안 보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 세번째로, 하나님의 인도를 순종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118절에 보시면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순종하여그랬습니다. . 우리는 순종하여라고 단어 하나로만 딱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그래 맞았어..나는 그 땅에 들어 가야허여~”하고 아브라함이 직통으로 그 땅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아브라함은 치열한 고뇌와 갈등의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순종의 자리에 도달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보세요..

//*아브라함이 본래 떠났던 곳이 어디라고 나와 있습니까? 그의 고향은 바로 갈대아 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31절에 보면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중간에 어디에 왔습니까? 하란에 왔어요. 하란에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하란에서 6년까지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곧바로 가나안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것도 쉽지가 않았을 것이고, 나중에 중간에 하란이라는 곳에서 한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을 본다면,..아주 늦게 떠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뒤늦은 순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하란에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죽었습니다. 죽고 나서 비로소 떠나게 됩니다.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순종인지 모릅니다. 또한 친척을 떠나라그랬는데, 아버지도 모시고 조카 롯도 다 데리고 간 것을 보면 부분적인 순종인지도 모릅니다.//

전 이것을 보면서,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고 그러지만 우리의 믿음이 결코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복잡한 이유가 섞여 있습니다. 회의와 의심도 섞여 있습니다. 우리의 순종 속에서도 불순종이 섞여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결코 온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믿는다면 깨끗하게 믿는다. 앗쌀하게 100%로 확 믿고 나간다이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극히 예외에 속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첫걸음, 순종의 첫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또 한걸음 걸어 갈 때..여러분..이 걸음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릅니다.

 

그래서 드디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본문 122절을 한목소리 읽어볼까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약속의 말씀대로 자기 자신의 명예로운 축복과 그가 위대한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놀라운 삶....

그러나 이 위대한 축복의 삶은 아브라함의 불완전했던 한 걸음의 믿음, 한 걸음의 순종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걸음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난 도저히 안돼.. 어떻게 그런 믿음의 순종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한걸음씩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구실험을 에디슨이 할 때, 드디어 전구실험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구가 얼마나 희미한지 촛불을 밝혀야 볼 수가 있었다고 해요.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전구를 만들긴 만들었는데 촛불을 비춰놓고 볼 수가 있었던 전구??? 그러나 이것이 첫걸음이었어요. 그 첫걸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만들어 날렸을 때 그 비행기는 공중에 불과 12초를 머물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첫걸음, 그 첫걸음이 오늘날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무수한 시간을 날수가 있지 않습니까? //

 

여러분~ 불완전해도 괜찮습니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다보면, 아예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의 좌절을 맛보고 세상 속으로 빠져 드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우리의 믿음이 갑자기 100%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하지만 우리의 믿음의 첫 스텝, 이 한해를 향한 우리의 믿음의 첫걸음, 순종의 첫걸음, 헌신의 첫걸음, 봉사의 첫걸음을 내딛어 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발걸음에 하나님께서는 3060100배의 놀라운 축복의 열매를 주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창세기 124절에 보시면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여기서 말씀을 따라 갔다고 성경은 간단히 처리하지만, 천신만고의 과정들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말씀에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 말씀에 따라 간다는 것이 요즈음 같이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에는 얼마나 더 큰 고통이겠습니까? 그런데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므로, 담대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3차원의 육의 세계는 4차원의 영적인 힘에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말씀을 따라, 미래를 향하여 이처럼 운명처럼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가다보면, 5절에 인생의 답이 나오게 됩니다. 다음 5절을 한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거기서 인상적인 단어가 무엇입니까? “마침내, 마침내 가나안 땅에,... 그렇습니다. 그 불완전한 믿음의 첫걸음, 순종의 첫걸음으로 그들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달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영원한 축복이 있는 땅..그 땅에 마침내 도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리를 가나안 땅에 도달 시키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반드시 예정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후손인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번 따라 하시길 바랍니다.“보내시기 위해 택하셨다택하시고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열방을 향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민족으로는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선택의 목적은 바로 이방민족들의 구원입니다. 선교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은 바로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세상과 구별하여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이 선택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은 바로 은총이요. 그 은총은 보내심을 통하여 증거 되며, 확정되는 것입니다. “택하신 것은 바로 보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제 택하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열방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업의 도구로 보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민들레 씨가 바람에 흩날려 들판을 날아 다른 곳에 터를 잡아 꽃을 피우듯이...씨를 뿌리듯 흩어지게 하는 일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보내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할 때,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걸음이 불완전한 걸음이라고 할지라도,....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을 신뢰하면서...우리가 한걸음 한걸음 믿음과 순종의 걸음을 옮겨 갈 때, 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28:3-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택하시고, 보내시는 이 선택의 비밀인, 이 영적인 원리를 붙들고 전도하며, 열방까지 선교하며 열매맺는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