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_Column

[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3) 이스라엘 예시바 학교에서

샬렘하우스주방장 2013. 9. 24. 18:22

[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3) 이스라엘 예시바 학교에서2012.01.18 17:36


율법주의 경계하다가 하나님 말씀 율법을 버려선 안된다

오래 전 예루살렘에 살면서도 못 가본 곳이 있었다. 예시바 유대인 학교였다. 거의 동네마다 있다시피 한 이 학교를 못 가본 것은 아마도 내 안에 있었던 어떤 경계심 때문인 것 같다. 그 경계심은 율법주의에 대한 경계심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까만 모자에 까만 양복을 입은 종교인(‘다띠’라고 부름)을 보면 율법주의자를 본 것 같아 한동안 옆으로 피하곤 했다.

예수님 때문에 이스라엘을 좋아하면서도 율법주의 때문에 유대인들을 경계하는 이 이중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과연 유대인은 율법주의자인가. 율법주의라면 그것은 왜 우리에게 불필요한가.

유럽의 한 도시에 유명한 미술관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미술관장이 보았더니 유명한 그림 하나에 칠이 벗겨지고 있었다. 관장은 화가를 불러 빠른 보수를 지시했다. 화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작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벗겨진 칠 안에 또 하나의 그림이 있었다. 더 자세히 보니 그것이 바로 그림의 원작이었다. 누군가가 원작 위에 칠을 덮어씌운 것이다. 화가가 조심스럽게 칠을 벗겨내자 오래된 원작이 나타났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 신조, 전통 그리고 크리스천의 삶은 얼마나 원작에 가까울까. 혹시 우리 자신의 생각과 편견으로 덮어씌운 칠은 없는가. 그 칠은 보존해야 하는가, 벗겨내야 하는가. 필자에게 이스라엘에 산다는 것은, 그리고 이스라엘을 순례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런 고민을 포함한다.

유대인의 한과 꿈이 서려있는 곳

예시바 문 앞에 선 필자의 심정이 그러했다. 필자가 찾은 예시바는 예루살렘 유대인 지역에 있었다. 유대인 지역은 예루살렘 동남쪽 성전, 통곡의 벽이 있는 곳이다. 그곳은 오랫동안 무너진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살았던 유대인들의 한과 꿈이 서려있는 곳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회당들이 보이고 각종 유대인 관련 시설들이 나온다. 그 중의 한 건물이 유대인 학교 예시바다.

예시바 학교 앞에는 총을 든 유대인 군인이 서 있었다. 학교 분위기와는 달랐지만 이스라엘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다. 허락을 받고 예시바에 들어갔을 때 첫인상은 매우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이곳이 학교이고 도서관이라면 분명 조용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소리가 나고 떠들썩한 것은 거의 술집 수준이었다. 마침 수업시간인지 둘씩 서로 마주보며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의자와 책상의 구조도 특이했다. 개인 책상은 서로 마주보도록 되어 있고 전체 책상은 앞을 향하여 반원형으로 놓여 있었다. 책은 앞에 있었지만 책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사람의 눈을 보고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은 웃으며, 또 어떤 사람은 소리높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필자에게 그것은 낯선 광경이었지만 또한 부러운 광경이기도 했다. 갑자기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열두 살 된 어린 예수님이 성전에서 박사들과 토론하는 장면이다.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눅 2:46). 예수님은 바로 그런 문화에서 자라나셨다. 우리 같으면 “말하기도 하시며 가르치기도 하시니”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셨다.

도서관엔 토라 사본·방대한 탈무드…

우리 같으면 분명 칸막이 있는 도서실에서 산더미 같은 책을 쌓아놓고 그것을 달달 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시바에는 칸막이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칸막이뿐 아니라 대화의 칸막이도 없었다. 토론과 논쟁, 서로 마주보는 대화 속에서 필자는 우리 교육이 가진 개인주의와 폐쇄성의 한계를 보았다. 왜 우리의 어린 학생들이 성적과 대학 앞에 한없이 숨죽이고 사는지, 왜 그것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왜 우리 교육에는 이런 개방성이 없는 것일까. 비단 교육에만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 좁은 폐쇄성과 밀폐성이 개교회주의를 낳고 교파주의를 부추기고 동서 갈등, 남북 분단의 비극을 만든 것은 아닌가.



우두커니 서 있는데 키파를 쓴 한 사람이 다가왔다. 선생인 듯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탈무드를 아느냐고 되물었다. 분명 내가 탈무드를 안다고 말하면 그는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아는 탈무드는 유대인의 재미있는 이야기책 한 권에 불과했다. 진짜 탈무드는 63권으로 된 방대한 성경 구전집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잘 모른다고 했더니 나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서 그는 나에게 수많은 토라 사본과 유대인의 구전, 미쉬나, 토셉타, 그리고 방대한 탈무드를 보여주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그 책들은 하나같이 손때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책 한권을 꺼내더니 어느 한 부분을 펼쳤다. 탈무드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그 부분을 읽었다. “모세는 8번 시내산에 올라갔다. 왜 8번인가?” 낯선 이방인을 안내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탈무드를 펴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유대인의 친절한 안내와 질문을 받으며 유대인 격언 하나를 떠올렸다. “만일 눈앞에 천사가 나타나 토라의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 해도 나는 거절할 것이다. 배우는 과정이 배움의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교를 ‘사색의 종교’와 ‘삶의 종교’로 구분한 사람이 있다. 마빈 윌슨(Marvin R. Wilson)이다. 그는 저서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 기독교 신앙의 유대적 뿌리’에서 기독교를 히브리 전통에 기초한 삶의 종교로 이해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삶의 종교를 지향하는가. 우리는 삶의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자주 율법주의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목욕물을 버리다가 어린아이까지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율법주의를 경계하다가 율법을 버려서는 안 된다.

예시바에서 돌아온 날부터 4복음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서 눈이 멈췄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마 11:29).”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 믿는 것이 율법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었다(마 5:17).

기도·제자도·평화 철저히 실천돼야

데이비드 플루서(David Flusser)가 저서 ‘Jesus’에서 말한 대로 예수님은 새로운 도덕에 대한 부름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새 도덕’은 ‘옛 도덕’의 폐기가 아니다. 오히려 더 철저한 준행이다. 살인(마 5:21∼26), 간음(마 5:27∼32), 맹세(마 5:33∼37), 원수사랑(마 5:38∼42), 구제(마 6:1∼4), 기도(마 6:5∼15), 금식(마 6:16∼18), 물질(마 6:19∼34), 제자도(마 7:18∼22), 평화(마 10:34∼39), 가족관계(마 12:46∼50), 세금(마 17:24∼27)은 더 성실히 그리고 철저히 실천되어야 한다.

짊어진 멍에를 벗어버리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그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는 것이 은혜다. 은혜는 반율법도 비도덕도 아니다. 율법에서 은혜로 옮겨진 것이 구원이라면 은혜에서 삶으로 옮겨진 것이 성화이다. 예시바 학교를 나오며 나 자신이 벗겨내야 할 칠과 붙잡아야 할 원작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아서 감사했다.

(한신교회 목사)